자주권의 확립을 목표로
100년에 걸친 우리민족 최대 과제 – 미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가지고 투쟁해야
1910년 이후부터 45년까지 36년간은 민족해방 즉 일제에 빼앗긴 자주권의
회복이 모든 사회변혁운동에서 최우선하는 투쟁과제가 되었다. 조선민중은 3.1운동, 원산총파업, 항일빨치산, 상해임시정부의 활동 등 국내외에서 타협 없는 격렬한 민족해방운동을 끈질기게 전개했다. 이러한 투쟁의 결실로 8.15해방을 맞이함으로써 해방된 우리 민족은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민족에게는 새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방후 한반도는 동서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한반도의 남측에 진주하고 있었던 미군은
반공정책을 취했고 단독정부(분단국가) 수립도 서슴지 않는 완강한 반공주의자 이승만의
편에 섰다. 이와
같은 미국의 반공정책은 당시 민중의 지향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자주통일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운동이 미국과 반동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성립하고
조국은 분단시대를 맞이한다.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8.15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가. 8.15이후에 민족해방과 자주의 문제는 해결되었는가.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한국병합'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지금은 이미 과거의
쓰라린 경험으로서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인가.
8.15이후 즉 분단시대의 우리민족의 최대과제도 역시 8.15이전과 마찬가지로 민족자주권의 확립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83년에 발표된 한민통 제2선언은 "우리민족의 수난은 금세기 초 국권상실에서 비롯되었다. 일제 36년간의 식민지통치 끝에 맞은 8.15는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진정한 해방의 날이
아니라 지배자가 한 외세로부터 다른 외세로 교체한데 불과하였다. 더구나 그것은 삼천리강토를 갈라놓은 새로운 수난사의 시발이었다. 한국을 지배하는 주되는 외세는 미국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곽동의 선생은 '조국통일론'에서 "8.15는 해방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식민지시대의 연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식민주의적 지배자가 달라졌을 뿐이다. 따라서 민족해방의 과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우리의 통일문제, 민족문제는 민족해방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8.15이후 분단을 초래하고 분단을 유지하고 있는 원인은 미국의
간섭이며 한반도의 남측에서 미국에 의해 빼앗긴 민족자주권을 우리민족이 되찾지 않는 한 한반도 통일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이 서구열강의 침략을 받기 시작한 19세기 중반부터 그리고 국권을 상실한 100년전부터 현재까지 자주권 확립이라는 과제를
생각할 때 우리민족은 역사를 단절할 것이 아니라 연속된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자주권 확립의 과제는 100년간에 걸쳐 미해결로 있으며 우리민족은
지금 현재에도 자주권 확립을 실현하기 위한 길고도 험난한 투쟁의 길에 있는 것이다.
61년 4월혁명 직후에 고양한 통일운동을 봉살한 박정희 등의 군사쿠데타 배후에 미국의 관여가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80년 5월 광주민주항쟁을 압살한 한국군의 작전행동도
주한미군사령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민족의 현대사에서 이와 같은 미국의 간섭이 없었더라면 민족의 운명은 전혀 다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선의 국권을 찬탈하여 식민지로 만듦으로서 일본이 우리민족에 대해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굴욕과 고난을 맛보게 한 것을 부정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대해서는 아직도 환상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조선에 대한 직접적인 식민지경영을
한 사실에 비하면 미국의 군사, 정치, 경제, 문화, 언론 등 모든 면에서 간접적이고 교묘한
지배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것에서 미국의 지배양상은 일상적으로는 국민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한국병합' 100년을 맞아 강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8.15이후에 일본에 이어 우리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투철하고 올바른 인식이며 불퇴전의 투쟁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