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마 에이지, 강상중 편 / 슈에이샤신서 1600엔
'나'의 육친의 목소리
신서판으로 780쪽. 1911년생 강금순 할머니에서 1941년생 고인봉씨까지 52명의 재일1세의 청취록이다. 이 묵직한 책은 읽어나가면 더욱 무거워진다. 그것은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는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생가에 홀로 살고 계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듯 그립고도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거의 아무말도 남기지 않고 후세로 떠난 나의 육친들이 제국-식민지-해방/분단시대를 어떻게 살고=투쟁해왔는가를 이
책에 기록하게 한 1세들의
청취록을 통해 알 수 있다. 편자·취재·집필진, 편집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일1세들. 이 책에 관여된 사람은 정말 귀중하고 고마운
일을 해주었다.
이 책은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지금'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증언집이다. 식민지주의와 전쟁, 공습과 원폭, 조선인조직·학교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압, 귀국사업, 차별과 억압…. 그것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또 그렇게 할
수 없는
'지금'이 리얼하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독자에게는 심각한 과제가 주어진다.
"말하는 것은 무언가를 말하지 못하는 것"이며 "듣는 것은 무언가를 전부 듣지 못한 것"이며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쓰지 않는 것"이다.
1920년생 강필선 할머니가 야간중학에서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배운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히라가나, 가타가나, 내 이름을 쓰고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한 느낌이었습니다. 눈앞이
트인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백지에 문자를 끊임없이 써온 인간의 나부랑이로써 부끄러움과 함께 마음으로 생각한다. 강필선 할머니가 느낀 감동을 불러일으킨
만큼의 문자·문장을 과연 쓴 적이 있었던가 하고. 그리고 모어가 조선어이며 사용하는 말이 일본어이며 처음으로 쓴 문자가 일본어로…. 즉 '재일 1세의 기억'은 '정말로' 말하고 듣고 쓴 것인가 하고. 말하지 않고 듣지 못하고 쓰지 못했던 것의
광대 무변함, 깊음, 무거움에 대한 상상력이 시험받고 있다. 그렇게 의식하고 긴장감을 가지고 읽는다는
과제이다.
이 책은 재일동포와 국내외 동포, 또 일본인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재일 1세의 기억뿐만 아니라 아이누의, 오키나와의, 부락의, 전 한센병 환자의, '장애'인의, 성적 소수자의… 차별 받고 억압받아온 마이널리티의, 1910년대부터 40대생의 사람들의 기억이 이 책처럼 기록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읽고 자신에게 더욱 줄질하고
싶다고 마음으로부터 바램이 끓어올랐다.
(황영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