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하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c.
대학을 졸업한 후 2006년 9월 김순희씨는 나홀로 여행을 떠났다.
"꼭 뉴욕에 가고 싶었다.(중략)/그리고 '9.11'이 일어난 현장을 반드시 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여행에서 찍은 사진 300여 장에서 작은 사진집 '22세 두 발과 NY'를 자비 출판했다.
김씨의 양친은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에서 만나 맺어졌다. 그 부모님 아래서 그녀는 처음부터 본명으로
살아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청을 졸업한 후에도 한통련 등에서 활동을 계속중이다. 두사람은 그의 등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면으로 "넌 한국사람이야"라고 '민족교육'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김씨의 감성을 풍부하게 했다.
"재일이 아니었다면 국적, 전쟁, 사회에 대한 것 등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9.19테러가 일어난 것은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친구들도 충격을 받은 것 같지만 '왜' '어떻게 하면'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 같았다. 잇달아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굉장이 가까운 문제로서 다가왔다. 대학에서 배우면서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떠난 장소는 바로 그날부터, 틀림없이 정해져있었을 것이다.
김씨는 지금 '시부야의 멋쟁이 Girls를 위해'가 캐치프레이즈의 프리 매거진의 편집일을 하고 있다.
시부야에서 노는 사람들도 전쟁·빈곤·분쟁·테러에 고뇌하는 사람들도 이 혹성의 주민들인데
라는 물음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거기에서 발신하고 싶다"고.
그리고 에니메이션이나 만화 등 "아이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 속에 순순히 들어가 세계나 사회의
일을 생각하는 형태로"라고 포부를 말한다. 지금은
다음의 발신을 위해 기술을 배우고 있는 준비기간이라고도. "아무튼 나 자신의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마지막에 김씨는 "발신하고 싶은 것은 또하나 재일동포 아이들을 향해 용기를
주고싶다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진집은 문예사 비쥬알아트에서, 정가 840엔.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