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진실위원회  

베트남 2000년 사업평가

Ⅰ. 조직사업

◆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진실위원회 결성과정
1999년 하반기부터 2-3곳의 단체들이 개별적으로 베트남관련 사업들을 시작하였다 (건치-의료진료단 파견. 나와우리-답사. 국제민주연대-거리캠페인 및 사과엽서쓰기 운동 및 학교교육 베트남을 생각하는 작가회의- 현지답사.베트남작가 초청).
2000년 1월 초 국제민주연대는 개별적 활동의 연대를 모색하며, 언론보도 이후 진상규명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사회단체 간담회를 제안하였다. 이에 일부 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참석단체: 민변, 민족회의. 나와우리. 나눔의집. 천주교인권위원회. 함께하는 사람들. 인권실천시민연대. 조용환(개인자격으로 참석) 〕그 자리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 구성이 논의되었다. 이후 베트남을 생각하는 작가회의, 부산 청년정보센터, 마산희망연대, 민족음악인협의회 등이 추가로 진실위원회에 결합하였고 인권연대는 분담금 문제 등으로 불참의사를 이후 전달하였다.

논의사항 : 사무국은 당시 간담회를 제안했던 국제민주연대가 맡기로 하였고 집행위원은 각 단체의 베트남사업 집행 실무자 또는 사업 책임자가 맡기로 결의하였으며 연구 및 실무집행을 위하여 자문위원을 구성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별도의 실무자를 두고 각 단체 및 개인은 매월 100,000원의 분담금을 매월 집행하기로 하였으나 이 결의안은 당시 참여했던 단체 및 개인의 집행력 부재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실무집행을 위하여 집행위원장 및 대표자를 선정하였는데 집행위원장은 사무국을 맡고 있는 국제민주연대 차미경 사무국장과 나눔의 집 혜진스님, 강정구교수 ·이해동 목사를 대표로 선임하였다.

4월부터 한겨레신문사와 공동캠페인은 아니지만 진실위원회 활동이 보도되기 시작하였다. .
한홍구, 차규근, 고경태, 황상철 등이 자문위원으로 결합하면서 학술 문화사업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고 한겨레21매체를 통해 베트남전 성격규명 및 사과운동에 대한 사회적 담론화의 필요성이 진실위원회 관련자들을 통해 제기되었다. 이후 사업 추진을 위해 진실위원회 실무자 배치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서 제기되었지만 당시 단체연대 수준 상 책임질 수 있는 토대형성이 되어 있지 못하다고 판단한 사무국에서 긴급으로 국제민주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하던 김숙경씨에게 진실위원회 사업을 제안하였고 당시 상황에서 사업진행을 위해 국제민주연대에서는 1년 동안 베트남 사업에 주력할 것을 결의하였다.

◆ 여론 조직
한겨레 신문을 제외한 off-line 언론은 문명금할머니의 성금전달 기사와 기자회견 외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보도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한겨레21의 특집기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슈와 관련 다양한 사업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1년 사업계획 속에는 민간인학살 자체에 대한 보도보다는 관련된 다양한 사업들의 연관성 속에서 과거청산의 청사진들을 만들어 가는 사업에 대한 홍보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후 사업계획 속에는 베트남 보도 관련 기자 메일링리스트를 만들어 지속적인 사업 업데이트가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각 사업설명회를 위한 기자 간담회 등이 별도로 조직될 필요가 있다.

Ⅱ. 홍보 사업
◆ '사이공 그날의 노래'
문화제는 초기 논의과정에서 재정부담 및 조직동원 문제 등으로 추진이 불확실한 의제였다. 그러나 한겨레 재정후원을 전제로 기획논의가 추진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재정후원 및 문화제 스폰서 등이 무산되어 진행여부를 두고 사무국을 비롯한 집행위원회는 많은 고심을 하였다. 특히 약 3-4천만원의 예산집행문제는 가장 고민이었으나 이미 기획단이 가동되었기 때문에 중도하차가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5-6월 집행위원회는 소수의 노력으로라도 추진해야함을 당면한 과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각계 모금 및 유례없는 티켓 판매 및 홍보작업에 들어갔다,
문화제를 위해 티켓 판매 및 후원을 한 단체는 진실위원회 참여 단체 외 약 45단체에 이른다.지난 몇 년 동안의 사회단체 문화행사와 비교할 때 베트남진실위원회는 작은 규모로서 많은 단체의 참여 및 협조를 이끌어낸 성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평일 날 시내 중심이 아닌 숭실대에서 약 1,300명의 시민/사회단체 참여를 통해 성공적인 행사를 이끌어낼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베트남 전 관련 '미안해요 베트남'이라는 사죄의 메시지를 공론화 할 수 있었다. 이 행사는 참전군인 단체들에게 진실위원회의 존재를 알리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사무국은 협박등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동시에 참전군인들이 겪어야 하는 딜레마에 대한 사회적 해결의 필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진실위원회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 CD제작 :
문화제는 베트남을 생각하며 진실위원회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예술인을 남겼다. 박치음 교수는 문화제를 기획하는 초반에 사무국에서 진실위원회 사업의 의미를 운동적으로 논의한 최초의 문화인이었다. 취지 및 운동방향에 대해 몇 차례의 공감대를 형성한 후 곧 '미안해요 베트남' 작사 작곡에 들어갔다. 사무국에서는  작사 /작곡자 선정에 많은 고심을 하였고 그간의 음악인 노래 분석을 통해 최종적으로 박교수에게 제안을 하였다. 그 이유는 베트남전 파병의 역사적 의미와 그 후과에 대해 가장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세대의 문화운동가라는 배경 때문이었고 문화운동에서는 유례없이 '전쟁과 평화' 라는 화두로서 노래운동의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공연 소식이 베트남에도 전해지면서 베트남 국영방송국은 노래를 알리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왔고 공연실황을 테이프나 CD로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당시 녹음상황이 해외로 보낼 정도는 아니였다. 이에 마지막 무대였던 '미안해요 베트남' 팀은 노래 녹음 작업을 결의하여 약 3달의 준비과정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문화제는 문화인들의 한번의 행사 참여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진실위원회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공명. 김영남. 노영심. 박치음. 아름나라 어린이 합창단. 어어부 밴드. 이지상. 원일(가나다 순) 등이 '미안해요 베트남' CD제작을 위한 후속작업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일이었다. 그러나 문화제 전체 기획은 현재 운동권이 형성한 상업+운동권 문화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행사의 본질과 의미전달이 연결되지 않는 가수들의 노래판이라는 점, 전체 기획과 연출 구성이 치밀하지 못했다는 평가 또한 주를 이루었다.
특히 CD 후속작업 결정된 이후  음반 총감독과 당시 문화제를 총 기획한 킴스원 대표(김지현)와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사무국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현재 제작된 CD는 총 2,000장이다.
이 중 개별 판매로 국내에서 약 500-800장, 해외 배포 300장, 기증 200장 정도가 예상된다.

◆ 홍보물 제작 (브로셔/ 자료집/ 발기인들을 위한 소식지 )
진실위원회 출범과 사업홍보를 위해 지난 1년 동안 제작된 홍보지는 다음과 같다.
브로셔 (5000부), 자료집 (1판 150부/2판 200부), 소식지(2000부), 교육용 자료집(2000부)심포지움 자료집(300부), 토론회 자료집(150부)
자원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 및 지속적인 사업 진행으로 대부분의 홍보물은 각계 각층에 배포되었다. 사무국은 홍보물 제작에 앞서 일관된 원칙(일체 재고를 남기지 않는다)을 확인하며 제작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베트남전 홍보물 배포를 위한 메일링리스트 구축작업을 착수하였다. 현재 메일링리스트는 일반과 발기인 두 종류로 분류되어 있다.
대부분의 홍보물은 이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배포되고 있다. CD 한 장 구입한 사람도 메일링리스트에 포함된다. 사회단체의 경우, 홍보물 제작을 위해 공동 모금에 참여한 경우를 제외하고 원가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배포되었다. 사회단체의 참여는 아주 미비했다. 일반 시민과 학술 연구 기관이 더 많은 양상을 보였는데 이는 현재 베트남 사업에 대한 사회단체의 관심 및 운동적 참여에 대한 정도를 알 수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 홈페이지 제작
민족회의에서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주창석씨와 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학과의 자원활동 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창석씨의 민족회의 퇴직과 자원활동 학생들의 베트남 연수로 인해 홈페이지 제작이 중도에 하차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자원활동가를 물색하였으나 실패, 결국 사무국에서는 2000년 하반기 홈페지이를 폐쇄하였다. 자원활동가 또는 상임할동가가 추가로 결합하기 전까지는 현재 운영 관리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진실위원회 소속 단체들의 공동운영관리를 대안으로 생각하였으나 각 단체가 처한 실무자 부족으로 인해 지원이 불가능하였다. 결국 사람을 기초로 한 조직적 집행의 결사체로서의 연대사업을 제외하고 현 단계 사회단체의 연대사업의 방식이 실무 진행의 공동 분담이라는 원칙을 사수할 수준은 아님이 입증되었다.    

Ⅲ. 재정 사업  
◆ 고 문명금 할머니 성금
문명금 할머님의 성금 전달은 역사기념관 사업의 종자돈이 되었다. 당시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시던 할머니께서는 혜진스님을 통해 좋은 사업에 지원금으로 받은 4,300만원을 쓰시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셨다. 베트남 사업에 성금 기탁을 하신 이유는 당신과 같은 전쟁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뜻의 결과였다. 이에 진실위원회는 베트남 현지에 역사기념관 설립을 위한 기금 기탁을 수락하였고 이를 계기로 이후 본격적인 역사기념관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하였다. 현재 성금은 일체를 포함 역사기념관 사업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공증을 받은 후 은행에 장기 적금으로 보관되어 있다.
역사기념관 사업 관련은 2001년 본격전인 준비 기획단을 구성 약 3-4년 중장기 사업으로 추진할 것을 발표하였고 장소는 푸엔 또는 빈딘성으로 현재 구상 중이다.  이후 베트남 정부와 역사기념관 추진 대표단의 협의에 의해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이 나올 것이다.

◆수익사업
별도의 수익사업은 없었다, 작년 한해 베트남 사업의 재정은 0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1년동안  총 ... 의 수입과 ..의  지출이 집행되었다. 별도로 사무국에서는 운영비마련을 위해 개별 모금 및 판매 (자료집/ 현지 커피를 비롯한 물품/ 후원금)으로 조달되었다. 재정 집행 관련 진실위 1년 사업은 불가사의한 조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업집행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집행위원회 위원들의 인맥을 동원한 게릴라 방식의 재정마련은 소수에 의한 헌신적 노력의 결과였다. 문화제를 계기로 사업비는 현격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최고의 열악한 조건과 최소의 인원으로 집행위원회는 적자를 보지 않고 2000년 사업을 마무리하였다. 계속 사업을 위해 2001년 개편될 진실위원회는 1차적으로 한해 예산기획과 실제 비용 마련을 위한 별도의 수익사업과 사업비 마련이 논의되어야만 작년과 같은 소수의 헌신적 노력 방식이 아닌 대중운동의 원칙에 입각한 계획적 재정마련의 원칙을 확고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별도의 수익사업은 사업 성격상 출판/ 연구/ 대중행사에서 전시할 현지 물건 판매/ 집회 등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수익사업의 기금은 사업 운영비로 조달되는 것이 마땅하리라 본다.

◆ 사업기금
위에서 언급되었지만 베트남 사업의 재정운영 방식은 예산에 기초한 집행구조를 갖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후원금은 한겨레신문사가 시작한 병원기금으로 모아졌다. 특히나 한 언론사에 의해 보도가 집중된 이슈이기 때문에 시민운동 사업이라는 측면 효과를 갖기 어려웠다.
집행된 재정은 사무국과 집행위원들이 조직한 개별모금, 출판사 후원, 원고료 조직, 자료판매 등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집행위원들 (강정구 이해동 한홍구 차규근 김칠준을 중심으로)의 각출과 원고료 지원. 지인을 통한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단체 분담금은 초기 논의에서 정기적 집행예산으로 안이 올라왔으나 실제 분담금을 계속 집행한 단체는 없었다. 실제 연대사업 분담금이라는 정기집행 운영은 불가능했고 행사 시  1-2단체가 소정의 분담금을 내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 참여한 단체의 규모 및 실정에 기초해 볼 때 무리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사무국의 평가이다. 특수한 사업 조건하에서 사업기금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후원자들의 역할이다. 출판/ 교계/학계/언론사 등으로부터의 사업지원금은 2000년 진실위원회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운영비 : 국제민주연대
광고비 : 한겨레 신문사
인쇄비 : 많은 부분을 사계절 출판사 + 후원금 (출판사)
개별사업비 : 개별후원금 + 집행위원+ 대표단 + 진실위원회 소속단체 +자원활동가들  
역사기념관 설립 성금 : 문명금 할머님 + 발기인 성금

◆ 1년 재정 보고

Ⅳ.학술/연구 사업
진실위원회 초반 계획보다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 조사 사업이 계획적으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적은 숫자의 연구자와 집행위원만으로 전체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무리였던 한해였다.
2001년에는 연구자들의 학살 관련 학술연구 및 과거청산을 위한 조사 및 연구작업이 한 단계 계획적인 기획사업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 기자회견
숙대 이만열 교수가 아카이브에서 나온 해제문서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 된 이후 약 3개월만에 자료가  한홍구 교수에게 전해졌다. 자료 번역 및 해독을 위해  약 2주 동안 한홍구 교수 지도하에 긴급 자원활동가팀이 구성되었다. 약 ?쪽의 자료는 미국 매릴랜드 아카이브에 보관된 해체 문서 중 일부분이었다.
기자회견을 위해 준비된 보도자료는 약 34쪽의 분량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 이후 정부 관련자들과의 협의적 논의 등의 필요성 등이 심도있게 논의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진실위원회 활동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현재 베트남전쟁 관련 비해제 문서는 여전히 아카이브에 있다.
2001년 학술 연구 사업에서 비해제문서 정보공개 청구운동에 대한 논의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 학술심포지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민간인학살' 여부에  대한 학술적 검토와 검증에 대한 목적에서 준비되었으나 참전군인들의 반대로 심포지움은 무산되었다. 심포지움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이견이 있었다. 진실위원회에 참여한 단체들의 조직적 참가는 거의 없었다.
학술심포지움에서 발표된 글은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무산으로 이해 연기되었다.

◆ 공동토론회
참전군인들과 처음으로 공동토론회가 2001년 12 월 15 일 진행되었다
보도이후 첫 대면이 이루어진 공식적인 자리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비용 및 준비는 양측의 공동분담 원칙 하에 추진되었다. 그러나 과연 이 자리에서 계속 논란이 되어온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양민학살'에 대한 논쟁은 미약했다는 평가를 양측 모두 제기 받았다. 특히 참전군인들과 토론회를 조직하는 문제의 필요성에 대한 내부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이후 사업에서 심도 깊은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 간행물 발간
브로셔 : 5000부
기사 모음 자료집 : 1판150부 / 2판 200부
베트남전 다시보기 교육용 책자 : 2,000부
심포지움 자료집 : 300부
토론회 자료집 : 500부
영문자료집 : 300부 (해외홍보)
소식지 : 1호 2,000부 / 2호 2,000부

◆ 교육
실제 보도이후 시민들의 반응에 비해 학교 내 토론은 미약했다. 특히 역사관련 학과나 연구기관에서의 과거청산의 문제로서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2001년에는 의식적으로 전교조 역사 교사들과의 간담회, 대학 역사학 관련 기관지, 신문, 교지 등에 베트남 관련 사업을 알리며 대학 강의조직에 주력한다. 교육방향은 이후 교육사업팀에서 별도 논의를 진행한다.  

Ⅴ.해외 연대 사업
2000년 초기부터 베트남 민간인학살 문제제기에 대한 해외홍보가 시작되었다.
김대중 정부에게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국제단체들의 서한들이 약 25개 인권 ·평화단체들로부터 조직되었다. 2차로 국제민주연대 네트워크를 통해 상반기 보도된 기사 및 활동들이 영문리포트를 통해 정리되어 약 300개 단체에 발송되었다. 하반기에는 '미안해요 베트남' CD 제작이 해외에 알려졌다. 2월 중 약 200여 해외단체에 CD와 진실위원회 영문브로셔가 전달될 예정이다. 2001년에는 진실위원회 활동을 해외에 알리는 출판사업이 병행될 계획이다.


Ⅵ.자원활동가 조직사업
지난 7월에 있었던 문화제에서 혼신을 다했던 자원활동가들이 문화제를 통해 접하게된 베트남전쟁과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쟁과 학살에 관한 문제등을 좀더 진지하게 고민하고자 세미나 형태의 모임을 갖게 되었다. 1차로 한겨레 기사를 중심으로 한 토론과 김동춘교수의 저서 "전쟁과사회"를 가지고 3, 4차례의 학습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베트남학생들과의 친교의 시간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룬바 있다. 하지만 자원활동가에 대한 교육 및 활동 프로그램의 부재로 현재는 개별적 관심정도에 따라 자원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재미있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 될 것이다.